이레네오(2006-03-27 18:25:19, Hit : 3300, Vote :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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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된 노트

종이는 더 이상 편지나 감정의 잡문을 담아내는 공간이 아니다.
복사기에 엎드리거나 프린터함에 담겨지는 도구일 뿐이다.
펜을 쥐고 끄적이는 것은 장을 보아야 할 목록이거나
이번달에 들어갈 생활비 계산 정도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아주 오래된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그 속에는 20대 젊은 시절에 한번쯤 겪었을 법한
쓸데없는 고민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 당시만 해도 분명 고민이었을텐데 지금 돌아보면 왜 그 따위것들로
마음 울적했는지, 그토록 방황했는지 알 수가 없다.
세상 경험이 부족했거나 감정을 추스리는 법을 몰랐던 탓이었을게다.
노트를 뒤로 넘기자 채워지지 않은 여백들이 드러났다.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들로 뭔가를 끄적거리던 그 시절로 돌아가
마음을 열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뿐이었다. 볼펜을 쥐었지만 여백은 점점 더 하얗게 변하고만 있었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않는 새벽에야 여백이 눈에 들어온다.
모르는 사람들은 백번을 들여다봐도 이해못할 프로그램 코드에 익숙해지다보니
감정을 풀어내는 글을 끄적이기 힘들어졌나보다.
펜으로 쓰는 글보다 컴퓨터 자판으로 쓰는 글이 익숙해진 순간부터
종이에 마음을 담아내는 법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오래된 노트를 보다보니 PC통신 시절에 남긴 글들을 찾고 싶어졌다.
독수리 타법으로도 200타에 버금가던 시절...
동호회 회원들과의 채팅, 정모, 번개, 그리고 모임후기...
그 유치하던 흔적들을 오늘 문득 찾고 싶어졌다.
종이에서 자판으로 넘어가던 과도기 시절이었기에
종이에 쓰던 글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듯 싶은 그 오래된 흔적들이 보고 싶어졌다.

이리저리 뒤져보지만 흔적을 찾을 길이 없는 것 같다.
아쉽다...



아이템플 (2006-04-09 04:45:29)  
찾고 싶은 추억을 찾지는 못해도 찾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한 순간 행복해 질 수도 있겠지요^^*
삶이 길어 질 수록 그 추억들을 점점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고 찾질 못하네요. 나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들면 그 추억을 찾고 싶어서 안달이 날 텐데 큰일이네요. 찾을 방법이 없을 텐데 말이죠...
정말 오랫만에 들어왔네요. 엄청난 황사에 밤엔 비가 뿌리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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